한국교회, 오직 예수님만이 답이다
상태바
한국교회, 오직 예수님만이 답이다
  • 채영남
  • 승인 2024.01.23 10: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발행인 채영남 목사
발행인 채영남 목사

한국교회가 바쁘다. 마치 새해가 시작되는 1월이 한 해 사역의 성패를 가늠할 시험무대로 여기는 것처럼 비춰질 정도다. 이러한 현상은 매년 반복되는 일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교계단체는 한국교회의 현재와 전망을 매년 쏟아 낸다. 여기에 ‘한국교회 위기’라는 단어는 자주 등장하는 단골 메뉴가 되었다. 이것만 놓고 보면, 한국교회는 위기가 아니었던 적이 없었을 정도다.

다수의 교계 전문가들이 말하는 한국교회 위기는 무엇일까?

한국교회 위기와 관련된 키워드를 나열하면 ‘성도 수 감소’, ‘막힌 전도’, ‘가나안 성도 증가’로 정리할 수 있다. 이처럼 한국교회의 위기를 ‘물량주의’적인 계산법으로 파악하는 듯 하다.

그러면서 대안으로 교인의 수를 늘릴 수 있는 각종 프로그램들을 제시하느라 바쁘다. 여기에 한국교회들도 경쟁적으로 동참하면서 매년 분주해지는 현상이 반복된다.

문제는 이러한 한국교회의 모습이 비단 어제 오늘이 아니라는 데 있다. 그렇다면 한국교회가 마주한 현실을 과거의 역사 속에서 살펴보고 답을 찾는 것이 현명한 일이 아닐까?

영국의 정치학자 에드워드 카(E.H.Carr)의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다”는 말에서처럼 현재의 한국교회는 과거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뿐만아니라, 역사 속에서 교회가 남긴 발자취들은 언제나 반면교사(反面敎師)와 타산지석 (他山之石)이 되어 교회가 나아갈 방향을 알려 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교회가 추구하려는 모습과 닮았던 시기는 언제일까? 이견이 있을 수 있으나, 중세교회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중세교회는 교회의 번영을 이야기할 때 단골 메뉴로 등장한다. 또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타락한 시기로 지칭된다. 여기에 교회 변혁을 말할 때도 중세교회는 항상 언급될 수 밖에 없다.

왜 그럴까?

중세교회를 한 단어로 함축할 수 있다면 그것은 ‘예수’의 이름이 가장 위에 서게 될 것이다.

중세교회의 성과나 추구한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그래서 가장 객관적이고도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바로 ‘예수’ 그 이름 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익히 아는 것처럼, 중세교회의 화려한 번영의 시작은 ‘예수’의 이름에 힘입은 복음의 열매다. 순교를 두려워하지 않은 제자들과 예수님을 믿었던 성도들의 피로 이루어낸 결과라는 의미다. 반면 중세교회가 타락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로 ‘예수’의 이름보다 ‘인간의 탐욕’을 우선한데 있었다.

타락한 중세교회의 변혁도 ‘예수’의 이름으로 시작됐다. 다시 말하면, 사라진 ‘예수’의 위치를 다시 제자리로 돌려 놓는 것, 그것이 변혁이요, 종교개혁이라는 의미다.

한국교회도 마찬가지다. 한국교회의 초기 역사를 떠올려보자. 선교사들이 목숨을 걸고 뿌린 복음의 열매로 오늘을 일구었다. 이때는 교회 수와 성도가 적었음에도 교회가 사회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갔던 영광된 시대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어디 이뿐인가.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도시에 십자가만 꽂아도 교회가 된다고 여겼던 시기도 있었다. 교회는 시간이 자남에 따라 대형화됐고, 사회적으로 위치가 높아지면서 중세교회를 닮아가게 됐다.

이러한 한국교회를 향해 세상은 “종교 장사꾼”이라며 조롱하고 손가락질을 한다. 이를 성경에 비추어 볼 때, 그야말로 한국교회는 ‘삯꾼’이 되어버린 슬픈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교회가 처한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은 명확해진다.

‘예수’, 바로 예수님을 기준에 두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중세교회를 개혁하고자 일어섰던 개혁자들처럼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 바로 예수님으로 회복해야 한다.

교회가 위기라고 느껴질 때, 교회가 부흥할수록, 교회가 사역으로 바빠 정신이 없다면, 그 때가 바로 ‘예수님’으로 점검을 해야 할 때라는 것을 기억하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골3:17)고 기록한 성경의 말씀처럼, 우리 삶의 기준,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수님’을 힘입어야 살길이 열린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붙잡자.

이처럼 한국교회와 성도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다시 일어선다면, 한국교회가 그토록 자랑했던 1907년의 평양대부흥의 역사가 다시 재현되리라 믿는다.

인간적인 지혜와 지식을 동원하지 않아도 된다. ‘예수’의 이름으로 밝혀왔던 복음의 빛으로 변화된 오늘의 대한민국이 이를 그대로 증언해 주고 있지 않은가.

다시 예수님으로, 천하만민을 복되게, 천하만민이 행복한 시대를 열어가는 한국교회를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개신교 지면 매체 <평신도신문>에 중복게재됩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