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주일을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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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주일을 맞아
  • 발행인 채영남
  • 승인 2023.04.08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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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한무제(漢武帝) 때에 백가를 축출하고 유가만을 숭상하자는 건의로 설치된 것이 오경박사(五經博士)다. 이때부터 유학은 국가적 정책과 보호로 발전하게 됐다. 선제(宣帝) 때에 이르러서는 유학자인 초망지(肖望之)를 태자의 스승으로 삼을 만큼 그 위세는 대단했다.

당시 유학자들은 그들로 인해서 국가를 패망으로 이끌어갈 것을 누가 알았겠는가?

선제(宣帝) 때에 이르러 견해의 다름을 해결할 목적으로 황실 장서각에 모여 논쟁을 벌이게 했는데 갈등의 골만 깊게 만든 결과를 초래한 꼴이 됐다. 관점이 같은 사람끼리 무리를 지어 다른 사람을 배척한다는 의미의 고사 ‘당동벌이(黨同伐異)’가 탄생한 배경이다.

한국교회.

부활절을 맞아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교차 되는 것은 왜일까?

한국교회의 자랑스러운 전통과 믿음의 자산을 꼽으라면 ‘부활절 연합예배’를 들 수 있다. 진보와 보수, 신학적 차이 등을 뛰어넘어 하나 된 모습을 보인 ‘연합예배’는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가 되었음을 선포하는 것과 다를바 없었다.

많이 모일 때가 70만이라고 했다. 이른 새벽 여의도로 모여드는 수많은 성도들의 물결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치유와 회복의 메시지 그 자체였다.

애석하게도 한국교회가 자랑할 만한 위대한 자산을 오늘에 이르기까지 계승하지 못했다. 한국교회의 분열과 다툼은 연합예배에도 영향을 끼쳤다. 올해 연합예배 단체만 봐도 크게 다섯 곳으로 보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준비하는 과정에서 잡음도 많았다. 같은 장소와 시간에 열리는 만큼 긴장이 감돌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부활절을 맞아 단체별로 발표한 부활 메시지 앞에서 참담한 마음이 들기까지 하다.

한국교회판 ‘당동벌이(黨同伐異)’로 비춰질까 두렵다. 아니 이미 현실화 됐는지도 모르겠다. 한국교회의 분열과 다툼을 보는 사회적 시선이 무뎌지다 못해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는 상황을 보면 그렇다.

이러한 까닭에 교회의 세상을 향한 메시지가 힘을 잃었다. 정확히는 교회가 신뢰를 잃었다고 보아야 옳다.

교회가 존재하는 중대한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부활에 담겨진 신앙이 아니겠는가. 이처럼 중차대한 절기에서도 하나 되지 못하는 교회.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야말로 유구무언(有口無言)이다.

시대는 급변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은 점차 극복이 되고 있으며, 이에 맞춰 세계 정치와 경제는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하기가 어려워졌다. 국내 정치와 경제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북한의 전쟁 위협은 위협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들린다. 진퇴양난이다.

교회는 국가적 어려움을 마주할 때마다 목소리를 높였다. 여론을 선도하고 이끌어갔던 리더십은 말할 것도 없다. 교회는 언제나 피난처였을 뿐만 아니라 안식처였으며, 산성이요 방패였다. 신앙의 유무를 떠나 사회는 그렇게 교회를 인정했다.

오늘의 위기에는 교회가 맥을 못 춘다. 목소리는 공허한 메아리처럼 흩어져 버리는 것 같다. 과거의 영광은 그 어느 곳에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제는 교회가 세상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말도 나온다.

한국교회가 변해야 하는 이유다. 부활절을 맞은 한국교회가 제2의 종교개혁을 선포하고 강도 높은 개혁 운동으로 체질을 바꾸어야 한다. 구시대적인 갈등과 대립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영혼구원의 사역은 그야말로 요원한 일이 되기 때문이다.

마음에 안들어도 품어 보자. 생각이 달라도 일단 이해하자. 부활의 예수님 이름으로 화해와 용서, 치유와 회복하지 못할 일은 없다. 오직 예수님으로 함께 부활하며 살아가는 한국교회를 꿈꾸며 기대해본다.

 

덧붙이는 글 | 개신교 지면 매체 <한국장로신문>에 중복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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