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 김동수·김남수의 강화에서의 항일운동 진실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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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 김동수·김남수의 강화에서의 항일운동 진실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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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7.10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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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1907년 이동휘와 함께 강화(江華)에서 항일운동
국가에 명예회복을 위한 적절한 조치 권고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김광동, 진실화해위원회)가 9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열린 제82차 위원회에서 ‘김동수·김남수의 강화에서의 항일운동’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결과, 진실규명대상자 김동수·김남수가 1907년 7월 24일, 30일 강화에서 이동휘와 함께 ‘일제에 결사 항전하자’는 내용의 대규모 반일 집회를 계획·개최하는 등의 항일운동을 한 사실을 확인하였다.

특히 김동수는 기독교를 매개로 이동휘와 친분관계를 구축하고, 1905년에는 이동휘가 강화(江華)에 설립한 육영학교에 기부금을 출연하고, 육영학교 소식을 ‘황성신문’에 기고하는 등 이동휘와 함께 교육활동을 통한 애국계몽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

김동수·김남수는 1907년 7월 고종황제 퇴위 및 군대해산을 골자로 하는 한일신협약(韓日新協約)이 체결되는 등 일제의 대한제국 병합 압박이 거세지자 이동휘와 함께 1907년 7월 24일 강화읍 연무당에서 ‘일본에 맞서 결사 항전하자’는 대규모 군중집회를 개최하였다.

이어서 1907년 7월 30일 김동수·김남수는 이동휘와 함께 강화 읍내에서 삼리 정도 떨어진 정족산성(鼎足山城) 전등사(傳燈寺)에서 일진회원의 출입을 막고 기독교인 400여 명과 이전에 병정(兵丁)이었던 사람들만을 입회시켜 ‘합성친목회(合成親睦會)‘라는 이름으로 세 차례에 걸쳐 대규모 집회를 열고 군중에게 반일의식을 고취시켰다.

김동수·김남수가 이동휘와 함께 7월 24일 연무당에서 대규모 집회를 개최하고, 곧이어 7월 30일 강화 전등사에서의 기독교인과 이전에 병정(兵丁)이었던 사람들을 모아 대규모 집회를 개최한 사실은 일제의 경찰보조원 니와켄타로(二羽堅太郎)의「복명서(復命書)」에서 그 내용이 확인된다.

김동수·김남수는 1907년 8월 9일 강화봉기 이후 일진회원으로부터 ”야소교인(耶蘇敎人, 기독교인)이 인민을 선동하였다“는 모함을 받아 일본군과 일진회의 잔여봉기 가담자 색출과정에서 체포되어 8월 21일 호송 도중 총살당하였다.

김동수·김남수의 강화에서의 항일운동이 진실로 규명되었으므로 ‘과거사정리법’ 제34조 및 제36조에 따라 국가는 김동수·김남수의 명예회복을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권고하였다.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은 “이동휘라는 거물 독립운동가에 가려져 활동 내용이 드러나지 않았던 김동수·김남수의 항일운동이 진실규명 되어 하나의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밝혀낸 것을 뜻깊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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